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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연애 소설 사랑의 끝을 말하다

사랑의 끝을 말하다 13 화 슬픔은 사랑을 닮아

by 유화 그리는 생물학자(BioCanvas)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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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뉴욕 유학 시절의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감성 소설입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기억과 감정을 재구성해 써 내려간 이야기입니다.


슬픔은 사랑을 닮아-

이서연은 정현우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자신 안에 어떤 모양으로 번져가는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날, 늦은 오후의 햇살은 무르익은 백도처럼 부드럽고 탁했다.

서연은 정현우의 집에 처음 발을 들였다.

오래된 책장, 벽을 채운 독일 시인들의 육필 원고,

책갈피 사이사이에 꽂힌 오래된 엽서,

그리고 창가에 비스듬히 기댄 작은 이젤 위에 걸린 습작.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그녀는 그 모든 질서와 혼돈,

결핍과 충동이 혼재된 공간에 묘하게 안도감을 느꼈다.

 

 

 

이 분위기그림 같아요.”

서연이 창 너머를 바라보며 말하자, 정현우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그림 속에 들어와 있어요, 지금 우리.”

그는 그렇게 말했다.

말을 마친 그의 눈동자가 서연의 왼쪽 어깨와 쇄골 사이를 비스듬히 훑었다.

서연은 본능적으로 숨을 삼켰다.

뺨이 조금 붉어졌고, 눈길은 창밖으로 도망쳤지만,

마음은 이미 그를 향해 가 있었다.

조용히 흘러나오던 쇼팽의 녹턴이, 창가의 커튼이 부드럽게 날리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간지럽혔다.

 

정현우는 다가왔다.

서연이 입고 있던 얇은 리넨 셔츠의 소매에 손끝이 닿았을 때, 그녀는 알았다.

이 남자와의 시간은 시계로는 잴 수 없고 논리로는 막을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입술이 닿기 전, 눈빛이 먼저 서로를 삼켰다.

서연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고,

정현우는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제스처를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다정하게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숨결이 부딪치고, 시간이 무너졌다.

바람 한 줄기, 햇살 한 조각, 그날의 공기까지도 그녀는 기억할 것만 같았다.

그날 밤, 그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동시에 녹아드는 소리를 들었다.

단지 사랑이 아니었다.

그건, 일종의 허락이자 항복이었다.

정현우라는 남자에게, 그의 불안정한 눈빛과 완벽하게 조형된 문장들

그리고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하는 침묵에게.

 

다음 날 아침, 그는 창을 열며 말했다.

이건...시작일까.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어떤 반복일까.”

서연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내민 머그잔을 받아들고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 어쩌면 내가 끝내 이기지 못할 감정일지도 모른다.

 

완벽함이 깨어지는 첫 소리-

정현우의 손끝은 문장을 쓰듯 섬세했고,

이서연의 숨결은 그 문장을 읽듯 조심스러웠다.

그들의 사랑은 완벽해 보였다.

낯선 도시의 골목길을 함께 걷고,

오래된 책방에서 마주한 시집의 구절을 소리 내어 읽고,

우산 하나를 나눠 쓰며 봄비에 흠뻑 젖던 밤.

그리고.....새벽 두 시, 음악이 멈춘 뒤에도 끝나지 않는 속삭임까지.

사랑해요.”

서연이 처음 그 말을 꺼냈던 밤, 정현우는 조금 늦게 대답했다.

너는 참, 위험하게 아름다워.”

그 말은 대답 같으면서도, 어딘가 회피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가 건네는 모든 말은 시였고,

서연은 그것이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 믿고 싶었다.

 

어느 날, 서연은 우연히 정현우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엽서들과 오래된 티켓

낯선 필체로 적힌 메모, 누군가의 얼굴이 반쯤 잘린 흑백 사진.

전에 보았던 그 긴생머리의 여자

그 순간 서연은,

그가 지나온 시간들 위에 누군가들이 조용히 남아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 역시,

언젠가는 그런 잔향이 될 수 있다는 예감이 문득 밀려왔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스위스에 있을 때잠깐. 오래된 일이야.”

그 말에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조용히 무너졌다.

그가 고백하지 않은 기억들이,

지금 이 방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서연은 정현우의 품 안에서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 남자와의 사랑은 마치 정제되지 않은 원석 같았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손에 쥐면 다칠지도 모른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녀는 지금,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정현우라는 남자의 고독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의 시는 내 몸을 뜨겁게 만들지만,

그의 침묵은 내 마음을 춥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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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로맨스  ◁ 사랑의 끝을 말하다 ▷ 연재 중입니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이별의 논리에 젖어든 한 장면 속으로 함께 걸어가요